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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형사변호사의 시선] 성범죄 사건에 대한 단상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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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하고 집에 가던 도중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곳을 온 적이 없는데 왜 이곳이 낯설지 않을까? 이게 기시감인가? 라며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붉은색 외벽,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으나. 다리에 설치된 가로등 불이 끝나며 순식간에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도로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히 내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 벽에 쓰인 건물 이름을 보며 깨닫게 됐다.

 

 

 

여느 때와 같이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던 어느 날, 한 남자는 직장 동료와 순간의 실수로 성관계를 맺고 말았다. 서로서로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했기에 당사자들은 다음날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을까?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전화를 받은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망치로 머리를 크게 맞은 것처럼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며칠 전 자신과 사고를 친 동료의 남편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난 뒤 이게 사고가 아닌 범죄가 되었다는 사실에 남자는 두려웠고 억울했으며 집에 있는 가족에게 미안해 눈물이 났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남자는 조사와 재판을 준비해야 했다.

 

 

그랬다. 필자가 회식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오다가 본 건물은 이 사건의 현장이었다. 건물의 벽돌 하나하나를 외울 정도로 수백 번 보았던 그 건물이었다. 다른 사건을 진행하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그 건물을 직접 보며 떠올랐다. 그리고 장시간 고통 받았던 여러 사람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남자를 만난 것은 그 남자가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난 직후였다. 남자는 자신이 부도덕한 짓을 저질렀기에 벌을 받는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면서도 그날의 일은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사건의 내용만을 들어보았을 때, 필자는 이 남자가 진짜 억울한 것인지 잘 판단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남자가 뭔가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가 가지고 온 자료를 하나씩 살펴보며 필자는 이 남자가 정말 무고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남자의 사건을 맡은 필자는 먼저 남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실제로 발생할만한 일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기에 일단 이야기가 믿을만한지 들어보았다.

 

 

남자는 위와 같이 이 사건 당일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날 마셨던 술이 평소보다 독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담담히 풀어나갔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남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직 선임도 되지 않은 사건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듣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긴 했으나 저 눈물은 진실 돼 보였고, 남자의 이야기는 변호사인 필자의 호기심과 호승심을 자극하였기에 끝까지 경청하였다. 이야기를 전부 다 들은 뒤, 필자는 남자를 위해 변호를 하기로 했고 향후의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의 절차를 상세히 설명한 뒤 경찰조사를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예전과 달리 의뢰인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서 수차례 자기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 다행히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자신이 믿고 의지할 사람이 결정되면 좋겠으나. 간혹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에 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수차례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그리고 해당 사건의 정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 정확히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기에 의뢰인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혹시라도 모를 고통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기사링크 : 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48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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