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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이 더큰 '참극'으로...피해여성 못지켜주는 공권력
2018-10-26
'강서구 아파트 전처(前妻) 살인사건’의 피해자 이모 씨(47·여)가 전남편 김모 씨(49)에게 살해되기 전에 국가가 이 씨를 도울 수 있는 기회는 적어도 두 차례 있었다. 하지만 김 씨를 강력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최악의 결말을 맞았다.
2015년 이 씨를 무참히 폭행한 김 씨를 가족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구속하지 않았다. 이 씨는 김 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숨겼고 김 씨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유야무야됐다. 김 씨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무시했지만 제재를 받지 않았다.
1년 뒤 김 씨가 이 씨를 찾아내 칼로 살해 협박을 한 날, 이 씨는 경찰서에 갔지만 김 씨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경찰이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무겁게 처벌하긴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하자 자포자기한 것이다.
○ 가정폭력사범 구속률 1% 수준
이 씨처럼 장기간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못 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폭력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면서 살인이나 중상해 등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최근 6년간 가정폭력사범의 구속 비율은 0.8∼1.5% 수준에 불과하다. 2014, 2015년에는 각 1.3%였지만 이후 0.9%(2016), 0.8%(2017), 0.8%(2018년 6월)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적극적인 구속수사를 해야 참극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올 5월 서울 관악구에서는 30대 남성이 동거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했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 남성은 영장 기각 뒤 40일 만에 동거녀를 찾아가 살해했다. 2016년 7월에는 60대 남성이 가정폭력 혐의로 두 차례 청구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된 후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신혜 변호사는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남편을 보며 피해자는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피해 정도가 심각하면 공권력이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접근금지 명령 어겨도 과태료뿐
현행법상 가정폭력사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경찰 등 수사기관이 즉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500만 원 미만의 과태료만 부과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에 대해 범칙금만 부과하는 현행법을 대폭 강화하고, 접근금지 명령 위반을 스토킹으로 간주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호주 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는 ‘스토킹 방지법’이 있어서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주변을 배회하는 행위를 범죄로 본다.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미국 여성폭력방지법에는 스토킹을 하다 2차례 이상 적발되면 구속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면서 “상대를 쫓아다니면서 위협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엄격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25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접근금지 사유를 좀 더 넓게 보고 구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김병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고인의 차량에 몰래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동선을 파악하고 범행 당시 가발을 착용하는 등 치밀하게 살인 계획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