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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변호사의 시선] 진술거부권의 행사에 관한 현실
2018-12-27
진술거부권(묵비권, right of silence)이란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공판절차나 수사절차에서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신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검사나 사법경찰관들이 조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해 조사를 받으러 온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수사기관이 자신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다소 역설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사기관으로부터 추궁과 압박을 당하는 피의자로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이 자신에게 불이익한 간접증거로 사용되거나 양형에서 불리하게 적용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묵비권 행사를 주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술거부권은 당사자평등 및 무기대등의 관점에서 피의자에게 보장된 필수적인 기본권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검사나 수사관 앞에서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의자신문을 마치면 해당조서를 출력하여 검토·수정하는 절차를 진행하는데, 조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사관 앞에 혼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조서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진술거부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제283조의2)과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제244조의3)을 규정함으로써, 수사과정에서의 피의자는 물론 공판단계에서의 피고인에 대하여도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어야 함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아니한 상태로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한 신문이 이뤄지면, 해당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는 “그 피의자의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증거능력이 부인돼야 한다”고 판시한바, 대법원은 해당 피의자신문조서가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검사나 사법경찰관들은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에게 끝없는 추궁을 이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피의자는 말 한마디를 잘못함으로 인해 범죄혐의를 사실상 인정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피의자가 조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하여도, 담당수사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려는 피의자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진실을 오도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의심하며, 미리 작성한 질문지에 따라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캐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법원 판례는 진술거부권이 적법절차원칙 및 무기대등의 관점에서 피의자에게 보장된 필수적인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만으로 재판에서 불리한 양형요소로 보는 것은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 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판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자를 자백에 의해 개전의 정을 표시한 자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진술거부권의 행사여부를 양형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사실 자체만으로 양형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면, 헌법에서 천명하는 진술거부권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사실 자체를 양형요소로 판단함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진술을 거부하는 행위가 당사자에게 보장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양형단계에서 불리한 요소로 참작할 수 있겠으나, 모든 형태의 진술거부권 행사를 불리한 정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진술을 거부하려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자백을 유도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피고인에 대한 인격적 비난요소로 삼으며 피고인에게 불리한 양형요소로 판단하는 관행은 최대한 지양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