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광 앵커= 대법원 주요 판례를 통해 일상에 도움이 되는 법률정보를 알아보는 '강천규 변호사의 잘 사는 법(法)', 오늘은 명의신탁과 민‧형사 책임에 대해 얘기 해보겠습니다. 강 변호사님, 오늘은 어떤 판결 가져오셨나요.
▲강천규 변호사= 한 달 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제명을 당했습니다. 명의신탁을 통해 차명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인데요.
이처럼 부동산 명의신탁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각종 부동산 취득과 관련된 규제 잠탈이나 세금 회피 등 여러 목적으로 많이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실소유자는 아니지만 부동산의 명의자로 되어 있는 사람이 다른 마음을 먹고 이 부동산을 처분했을 때, 법으로 금지된 명의신탁을 한 것은 잘못했지만, 배신을 한 사람 또한 형사처벌을 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해야 공평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많은데요. 오늘은 과연 이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건가요.
▲강천규 변호사= 사안을 조금 각색해보면요. 김모씨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해 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지인이었던 이모씨에게 부탁을 했고, 이씨의 협조로 이씨 배우자 명의로 등기를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이씨는 사업상 급하게 돈이 필요해지자 김씨의 허락없이 배우자 명의로 등기된 김씨의 부동산을 매도해서 사업자금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김씨가 이씨 부부를 횡령죄로 고소하는 한편, 민사적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 사건입니다.
▲앵커= 명의신탁이 잘못이라고 해도, 이건 누가 봐도 남의 재산을 횡령한 거 같은데, 법적으로 달리 볼 여지가 있는 모양이네요.
▲강천규 변호사=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올해 2월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좀 보셔야 합니다. 종래에는 배신을 한 명의수탁자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해 왔는데, 올해 2월 우리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로 종래의 판결을 변경해서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할 때 성립되는 범죄인데, 타인에게 명의를 빌려줘서 타인의 부동산 등기명의자로 되어 있는 사람을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는데요.
우리 대법원은 명의신탁자와 수탁자의 관계가 법을 어기면서 형성된 관계이기 때문에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관계가 아니어서 명의수탁자를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앵커= 형법상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민사적으로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인가요.
▲강천규 변호사= 이 부분이 오늘 소개해드릴 판결의 핵심 내용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행위는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형사상 횡령죄의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앵커= 형법상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은 인정이 된다는 거네요.
▲강천규 변호사= 네, 우리 대법원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지도이념, 증명책임의 부담과 그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고 봤습니다.
불법행위에 따른 형사책임은 사회의 법질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행위자에 대한 공적인 제재(형벌)를 그 내용으로 하는데, 민사책임은 다른 사람의 법익을 침해한 것에 대해서 행위자의 개인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피해자에게 발생된 손해의 전보를 그 내용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손해배상제도는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는 형사책임과는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앵커= 잘 사는 법, 명의신탁에 대한 오늘 내용 정리해 주시죠.
▲강천규 변호사= 최근 집값이 폭등하면서 부동산 세금 폭탄 맞느니 차라리 명의신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언론보도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 본 것처럼, 예전에는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대로 부동산을 처분할 경우 횡령죄로 고소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어서 형사처벌을 묻기가 어렵게 되었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장의 이익보다 큰 손실을 보실 수도 있으니 명의신탁을 선택하실 때 보다 더 신중하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네, 소탐대실 할 수 있으니 함부로 명의신탁 하면 안된다는 말씀이신데, 오늘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