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남현석 변호사]‘유예(猶豫)’란 ‘일을 실행하는 데 날짜나 시간을 미루거나 늦춤’이라는 뜻이다.
형사절차에는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등 유예제도가 많다.
이와 관련, 필자는 변호사가 되기 전 유예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범죄를 저질렀는데 왜 처벌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형사변호사로 일하며 느낀 바가 있어, 부족하지만 본 칼럼을 통하여 형사변호사로서 유예제도에 대해 변호(辯護)하고자 한다.
하지만 유예제도는 모든 범죄에 적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예를 함으로써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집행유예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고(형법 제62조 제1항),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취소나 실효될 수 있다.
기소유예 역시 피해자가 항고나 재정신청을 거쳐 기소유예 처분을 다툴 수 있다. 다만, 유예제도는 우선 피의사실이나 유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죄를 저지른 것으로 인정이 되나, 여러 가지 정상사유를 참작하여 기소나 선고, 형의 집행 등을 유예하는 것이다.
우리 법제는 범법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기소단계에서, 선고단계에서, 그리고 형의 집행단계에서 왜 이렇게 만들어 주는 걸까? 요약하자면 ‘선처’를 해주기 위함이다.
언론에서 고소나 구속, 조사 이야기를 자주 접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형사절차의 무게를 다소 가볍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형사절차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국가가 한 개인에게 형벌을 주려는 그 절차에 진입하였을 때 얻게 되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다가 실제로 구속이 되거나 실형이 나오면, 징역 1월이라도 선고가 되면, 시간상으로는 너무나도 짧지만 그 한 달로 인하여 당사자의 남은 인생이 확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아무런 소식 없이 3일만 직장에 나오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걱정하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유예제도는 그만큼 사회생활을 하는 개인이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임을 일깨워, 반성의 시간을 주기 위한 제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나의 형사변호사로서의 역할이 바로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만들지도 못한다"
다만 극단적인 예지만 장발장이 단지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의뢰인도 자신의 행동에 합당한 벌만을 받아야하지 않을까. 어련히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알아서 판단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사기관 또한 공직사회에서 나름의 입장이 있고, 증거나 정황이 너무 불리하거나 형사절차에 처음 임하는 의뢰인이 긴장된 상태에서 잘못된 진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사절차는 당사자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고 역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적용되는 법조를 법리적으로 다투어 방어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의뢰인이 불합리하게 무거운 판결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형사변호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유예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의뢰인의 소중한 인생이 단 한 번의 범법행위로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범죄 피해자의 삶과 인격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볼 때, 피해자의 주변에는 조력을 구할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제도적, 법률적 조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조력도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해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도움을 주거나 동정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가해자를 손가락질 할 때, 가해자의 곁에서 이를 지켜줄 사람도 마땅히 필요하다. 그것이 형사변호사이고, 제도적으로는 유예제도이다.
사람들의 인생을 짊어지고 있는 형사변호사의 입장에서, 유예제도가 있어서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유예제도는 면죄부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반성과 교화의 의미로 선처하는 차원일 뿐이다. 만약 이 제도를 얕잡아 생각하여 어떠한 행동의 변화도 없이 생활한다면, 다음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시퍼런 법의 무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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