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 내가 사람을 죽였다. 내 손에 들려있는 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입고 있는 이 피 묻은 옷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나는 칼을 땅에 묻고, 입고 있던 옷을 태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내 범죄는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고 결국 재판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무슨 죄로 처벌 받게 될까? 살인죄 외에 혹시 증거인멸의 죄로 처벌을 받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최근 정재계의 유명한 사람들이 자신의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보며, 증거인멸죄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당연히 증거인멸로도 처벌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증거인멸죄로 처벌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이 왜 증거인멸로는 처벌받지 않는지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드라마나 뉴스를 보며 증거인멸을 논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위 사례의 ‘나’는 왜 증거를 인멸해 놓고 증거인멸죄로 처벌을 받지 않을까? 혹시 증거인멸죄라는 게 괘씸죄처럼 그냥 이름만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형법 제155조 제1항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 처벌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형법 제155조 제1항을 살펴보면 ‘타인의’라는 말이 보인다. 그렇다.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해야만 처벌받는 것이지, ‘나의’ 범죄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아무리 자기 범죄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더라도, 처벌받지 않게 된다. 새삼 죄형법정주의가 관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형법은 단어 하나에 너무도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무죄가 유죄가 되기도, 유죄가 무죄가 되기도 한다. 법을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첫 걸음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법문의 중요성과 이를 해석함이 왜 중요한지를 알아보았다. 혹시라도 당신이 형사문제로 인하여 수사기관 또는 법관 앞에 서게 된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내 죄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법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 읽지 못한다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경험 많은 변호사를 찾는 것. 방어권 행사를 제대로 하기 위한 첫 걸음이자,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본 글쓴이는 노파심에 한 줄 덧붙인다. 당신이 증거를 인멸하다 걸릴 경우 증거인멸죄는 성립하지 않겠지만, 동시에 당신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정상참작의 여지가 사라진다는 것을...(by 김민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