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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성범죄에서의 심신미약 주장
2017-11-16
[스페셜경제=최고다 변호사]성범죄로 의뢰인과 상담을 하다보면 의뢰인이 사건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물론 맨정신에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지만 음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사건 이야기에 술이 빠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강제추행의 경우 주취상태에서의 범행이 절반에 가깝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이러한 경험이 아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술이 과하여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변호사를 찾아온 의뢰인들도 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데 변호사도 난감한 경우이다.
만약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한데 이처럼 술에 완전히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면 법은 이 사람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앞서 말한 소위 ‘맨정신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비교하여 과연 똑같이 비난하고 처벌할 수 있을까?
술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에는 좀 더 부합하는 결론이겠지만, 법에서는 그렇지 않다. 형법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하거나, 그와 같은 능력이 미약한 자는 처벌을 감경하고 있다.
전자를 심신상실, 후자를 심신미약이라 일컫는 바,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이와 같은 규정을 적용하여 처벌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일견 음주가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지만 이는 우리 형법의 기본원칙인 책임주의와 관련해서 이해를 해야 한다.
잘못이 있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라면 형벌을 과할 수 없으며, 책임이 있더라도 그 크고 작음에 따라 처벌의 수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술에 만취하여 행동을 제어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정상인처럼 규범에 맞춰 행동하는 것을 기대하고 똑같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론적인 이야기였다면 실무는 조금 다르다. 법조항과 이론대로라면 술에 취하여 범죄를 저질렀다면 처벌을 면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중요한 점은 그렇다고 앞서 말한 의뢰인들이 모두 처벌을 면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의뢰인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 자신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여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인데, 법조항이나 이론과는 다르게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주장은 실무에선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형편이다.
특히 성범죄에서는 법개정으로 인해 심신미약의 상태가 인정되더라도 법원에서 재량으로 처벌을 감경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정하였기 때문에 그 주장이 더욱 힘들다.
이는 책임주의라는 기본원칙 속에서 술이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도록 그 판단을 엄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심신미약으로 감경을 받은 사례라면 도저히 술에 취하지 않은 일반인과 동일하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경우일 것이며 이를 적절히 소명을 한 경우일 것이다.
최근 음주로 감경을 받았던 조두순의 출소가 다가오며 이에 대한 비난과 함께 심신미약 규정을 폐지하거나 고쳐야 한다는 요구까지 거센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심신미약의 인정과 감경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며 성범죄의 경우에는 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술이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은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음주로 인한 감경을 주장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술에 취했다고 무조건 감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법원 또한 그 인정에 엄격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충분한 소명자료와 함께 이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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