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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변호사의 시선] 변호, 의뢰인의 생각과 감정을 정제하는 일
2018-11-14
의뢰인과 경찰서에 도착하면 슬쩍 의뢰인 얼굴을 한번 살펴보게 된다. 긴장하였는지 혹시 겁에 질린 것은 아닌지, 혹시 긴장한 상태라면 오늘의 조사가 잘 진행되도록 미리 긴장을 좀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무죄를 다투든 혹은 인정하고 형을 경감시키기 위함이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사사건으로 조사를 받는 것은 처음인 경우가 많기에 경찰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바짝 얼어버리고 만다.
내가 동행한 의뢰인 역시 경찰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필자와 약속을 하고 경찰서 앞에서 만났다. 도착해서 본 의뢰인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한 것은 물론 경직돼 있었다. 이렇게 되면 억울한 점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타인에게 신뢰를 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조사 약속시간이 다 됐지만, 필자는 일단 수사관을 먼저 만나 현재 의뢰인이 너무 긴장한 점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고 있는지 정도를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고 잠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시간을 확보하고 왔다.
의뢰인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필자와 오늘 조사의 예상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됐는지, 그제야 어색하게 웃을 수 있었다. 경찰서 본관을 들어서서 담당사건의 수사관을 만나고 그 앞에서 조사가 시작된다. 간단한 인적사항에 대한 부분을 묻고 본격적으로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질문 하나하나에 함의가 숨겨져 있기에 의뢰인은 곰곰이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에 답을 해간다.
기존에도 이야기 했던 바와 같이 의뢰인의 감정은 불가피하게 사실관계에 관한 혼선을 야기한다. 따라서 감정선을 정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 하더라도 신빙성이 매우 떨어져 보이게 된다. 그렇다고 감정을 배제하라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억울한 점 또는 반성하는 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반대로 진실성 있게도 보이기에 이 감정선을 어디까지 정리해야할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조사란 현재까지 확인된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추궁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의뢰인들의 멘탈이 부서지고 만다. 따라서 이럴 때면 변호인은 의뢰인의 정신상태를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적시에 필요한 행위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변호인은 의뢰인의 옆에서 조사를 지켜보다가 필요시 조사를 잠시 중단하고 휴식시간을 확보하거나, 의뢰인에게 조언을 주는 등 정서적 측면도 관리해 줘야 하는 것이다.
형사피의자에 관한 조사는 보통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당신의 잘못을 밝히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내밀한 영역을 묻기도 하며 또는 강하게 추궁을 하기도 한다. 이때 당신의 옆에 있는 변호인만이 유일하게 당신의 편이 되어 준다. 이처럼 형사소송변호사(형사전담변호사)의 업무는 단순히 법적인 의견의 정리만이 아니다. 오히려 의뢰인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정제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형사소송 변호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범죄자라고 생각할 때 단 한사람이라도 당신의 편에 서서 싸워주고 때로는 변론을 해준다. 따라서 길고 긴 여정이 될 형사사건의 첫 걸음은 자신에게 든든한 아군을 먼저 찾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