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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놀림 받을까봐… 이혼전 등본 잔뜩 떼놔

2018-08-27

 



 

 

 

“애를 생각했으면 네가 좀 더 참았어야지. 어쩌자고 애를 두고 이혼을 했어?”

 

 

오늘도 동창모임에서 전 ‘죄인’이 됐습니다. 지난해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들을 남편에게 맡긴 채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손가락질을 받는데, 아이까지 두고 나왔다니 사람들은 저를 ‘세상에 둘도 없는 매정한 엄마’로 봅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구차해 전 오늘도 “그러게…”라고 말하며 쓴웃음만 지었죠.

 

 

이혼까지 이르게 된 제 속사정은 아무도 모릅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의 경제적 능력은 ‘제로’였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려 들었고, 취하면 늘 폭력이 따라왔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오는 건 제 몫이었죠. 아이가 클수록 아이 앞에서 얻어맞는 제 모습을 보이느니 헤어지자 싶었습니다. 그 대신 저는 양육비를 벌고 아이와는 일주일에 한 번 접견을 합니다.

 

 

그런데도 제겐 늘 ‘자식 버리고 혼자 먹고 사는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같은 처지의 남자들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유독 이혼한 여자에겐 더 가혹하죠. 함부로 묻거나 판단하지 말고, 이혼이 누군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편견 없이 받아줄 수 없는 걸까요. 

 

 

 

■ 명절 때마다 ‘불쌍’ 손가락질… 편견 버려주세요

 

 

 

“야, 집에 가면 외롭지? 궁상떨지 말고 나랑 술 한잔하자.”

 

 

결혼 2년 차인 3년 전 이혼한 직장인 김지훈(가명·37) 씨는 퇴근 때마다 건네는 상사의 인사가 늘 당혹스럽다. 이혼남은 언제나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의 대화는 늘 한결같다. “야, 괜찮아. 요즘 애 없이 이혼한 건 흉도 아니야.” “근데 어쩌다 이혼까지 한 거야?” “돈은 어떻게 나눴어? 결혼은 로맨스지만 이혼은 비즈니스라던데….” 위로랍시고 건넨 말에 김 씨는 두 번, 세 번 이혼의 아픔을 곱씹는다.

 

 

누구나 주변에 이혼한 사례가 있을 만큼 이혼이 늘어난 시대다. 오죽하면 요즘 커플들은 결혼 1주년에 혼인신고를 한다고 하지 않나. 호적에 이혼경력을 남기지 않기 위한 일종의 ‘결혼 숙려 기간’이다. 하지만 이혼이 늘었다고 이혼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까지 옅어진 것은 아니다.

 

 

2000년 이혼한 박재영(가명·54) 씨는 지난 18년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서서히 마음속에서 떠나보냈다. 이혼까지 이르게 된 마음의 상처를 봐주기보다 ‘이혼남’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누나들은 입버릇처럼 ‘불쌍한 놈’이라고 했고 형수들에게선 ‘학창시절 놀았다던데 그럼 그렇지’ 하며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집안 어른들은 ‘집안 망신’이라고 꾸짖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혼자들은 직장생활에서도 위축될 때가 많다. 소송과정에서 법정 출석을 위해 부득이하게 결근을 자주 하게 되거나 급여명세 등을 ‘사실조회’하는 과정에서 원치 않게 이혼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4년 전 이혼한 장모 씨는 “회사 승진에서 자꾸 밀렸는데 이혼 여부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보수적인 기업들은 인사고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조수영 가사전문 변호사는 "이혼 소송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혼 당사자들은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법정출석을 이유로 결근하거나 다소 늦게 출근하더라도 이해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녀를 둔 채 이혼한 경우엔 본인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이혼가정 자녀’라는 낙인이 찍힐까 더 큰 죄책감을 느낀다. 이혼 후 초등학생 딸을 혼자 키우는 서진우(가명) 씨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제일 불안했던 것은 새 학년을 맞을 때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호구조사”라며 “담임선생님이나 주변 엄마들이 우리 딸에 대해 편견을 가질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말했다. 이혼 1년 차를 맞는 이모 씨(33·여)는 “증명서를 낼 일이 생기면 아이가 위축될까 봐 일부러 이혼 전 등본을 잔뜩 떼놨다”며 “그런데도 누가 ‘어른한테 똑바로 인사를 해야지’라고 아이를 훈계하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털어놨다.

 

 

이혼전문 한승미 변호사는 “가정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혼이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갈등이란 것을 안다”며 “그럼에도 남의 가정사에 대해 쉽게 말하고 그 가정의 아이들에게까지 편견을 갖는 것은 일종의 가혹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술자리든, 엄마들 모임에서든 남의 가정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곧 내 가정을 두고도 사람들이 쉽게 얘기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혼을 내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이의 사생활을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곳곳에서 이혼 등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6세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김모 씨는 “여섯 살 아들을 여탕에 데려갈 수도, 그렇다고 남탕에 혼자 보낼 수도 없어 올여름 폭염 속에서도 수영장 한 번 데려가지 못했다”며 “엄마나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사회가 더 많이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사링크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0&aid=0003165860&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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